gallery R
서울특별시 성동구 광나루로 294 성동세무타워 B01호
TEL 02-6495-0001
e-mail galleryrkr@gmail.com
2026년 4월 25일 - 5월 30일
작가와의 대화 : 2026년 4월 25일(토) 오후 3시
전시오픈 :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픈시간 :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전시휴관 : 매주 일요일, 월요일
전시기획 : 갤러리 R 객원큐레이터 류병학
김태헌 작가는 1993년은 군사정권이 종말을 고하고 문민정부(文民政府)가 들어선 해에 삼정미술관에서 첫 개인전 <‘감춰진 역사’의 숨은 그림 찾기>를 개최한다. 1994년 그는 동아갤러리에서 열린 ‘평론가가 선정한 유망작가’ <이 작가를 주목한다>(윤범모 기획)에 심광현 미술평론가의 추천으로 선정된다.
1998년 그는 <공간의 파괴와 생성_성남과 분당 사이>(성곡미술관/내일의 작가)로 미술계에 주목받으면서 <민중미술 15년전>(국립현대미술관), <청계천 프로젝트>(서울시립미술관), 광주비엔날레, 〈BIG BOYS〉(Andrewshire Gallery, 미국 LA) 등 국내외 다양한 그룹전에 초대되었다.
그는 성곡미술관, 삼정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갤러리 피쉬, 갤러리 스케이프, 스페이스 몸 미술관, 봉산문화회관 기억공작소, 스페이스 자모, 갤러리 마리타임 등에서 20여 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그는 1999년과 2000년 지역신문인 ‘분당뉴스’에 그림+글 형식의 ‘그림일기’를 연재한다. 그는 2007년 중앙일보 공지영 연재소설 <즐거운 나의 집> 그림작업을 했으며, 경기일보에 <경기, 1번 국도를 가다>라는 타이틀로 그림/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는 이미지와 텍스트로 이루어진 몇 권의 ‘아트북’도 발행했다.
<천지유정(天地有情)>(갤러리 피쉬. 2004), <1번국도>(그림문자. 2004), <김태헌 드로잉>(아르코미술관. 2006), <그림 밖으로 걷다>(갤러리 스케이프. 2007), <붕붕>(그림문자. 2010), <검은 말>(TABLE STUDIO. 2010), <빅보이>(UPSETPRESS/알마 출판사), <연주야, 출근하지 마>(UPSETPRESS/알마 출판사)가 그것이다. 2020년 스페이스 자모에서 발행한 <그림아 놀자>는 김태헌의 9번째 아트북이다.
김태헌의 작품은 금호미술관, 성곡미술관, 부산민주기념관, 경기도미술관, 아라리오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국공립미술관과 사립미술관 그리고 개인 컬렉터들이 소장하고 있다.

김태헌_그런 질문_갤러리 R 전시광경. 2026
김태헌의 ‘그런 질문’
미술평론가 류병학
그런 질문? 이런 질문도 아니고 저런 질문도 아닌 그런 질문. ‘이런 / 저런 / 그런’은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화자의 거리감이나 맥락 혹은 태도를 드러내는 지시 관형사(또는 지시 형용사)이다. 따라서 그것은 단순히 영어의 ‘this/that’으로 번역되기에 미묘한 의미 차이가 있다.
‘이런 / 저런 / 그런’에서 ‘~런’은 ‘~러한’의 축약형으로 성질이나 상태 그리고 유형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러한’은 가까운 것을 뜻한다면, ‘저러한’은 멀리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은 거리가 아니라 이미 언급되었거나 공유된 것을 뜻한다.
‘이런’은 ‘이런 날씨’나 ‘이런 문제’ 혹은 ‘이런 상황’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내가 보고 있거나 느끼는 ‘현재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런’은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을 주고, 때로는 “이런 일이!”라는 놀라운 일이나 “이런 이런...”이라는 딱한 일을 보기 힘들 때 쓰인다.
‘이런’이 화자에게 가까운 것이라면, ‘저런’은 화자뿐만 아니라 청자에게도 먼 것을 뜻한다. ‘저런 행동’이나 ‘저런 집’ 혹은 ‘저런 사람’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저런’은 저기 떨어져 있는, 나와 무관한 ‘객관성’을 띤다. 따라서 ‘저런’은 관찰자적 시선을 뜻하지만, “저런~”이라는 뜻밖에 놀라운 일이나 딱한 일을 보거나 들었을 때 안타까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은 ‘그런 이야기’나 ‘그런 방식’ 혹은 ‘그런 사람’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서로 알고 있는 것(대화에서 이미 나온 것)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런’은 청자와 공유된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런’은 중립적이거나 때로는 거리두기에도 사용되는데, “그런 건 별로지”는 약한 부정을 의미한다.
와이? 왜 김태헌은 ‘이런’도 아니고 ‘저런’도 아닌 ‘그런’ 질문이라고 표기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런 질문’은 그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질문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김태헌의 ‘그런 질문’은 대상 자체를 지시하기보다 오히려 화자와 세계의 관계를 드러내는 장치가 아닌가?
“‘그런 질문’은 천일야화(千一夜畵)다.”
천일야화(千一夜畵)? ‘천일야화(千一夜話)’는 들어봤지만, ‘천일야화(千一夜畵)’는 처음 듣는다고요? 여러분께서 더 잘 알듯이 ‘천일야화(千一夜話)’는 ‘아라비안 나이트(The Arabian Nights' Entertainment)’로도 불린다. 이야기는 처녀 셰헤라자데(Scheherazade)가 샤리아 왕 샤리아르(Shahryar)에게 시집가면서 시작된다. 왕은 왕비의 부정에 충격을 받아 매일 밤 처녀와 잠자리를 하고 날이 밝으면 그 처녀를 죽인다. 셰헤라자데는 그런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왕에게 밤마다 이야기를 들려준다. 매일 밤 이어지는 그녀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왕은 빠진다. 더욱이 셰헤라자데는 밤마다 이야기를 끝맺지 않고 멈췄기에 왕은 나머지를 듣기 위해 그녀의 처형을 미룬다. 셰헤라자데의 이야기는 1천 1밤 계속된다. 결국 왕은 세헤라자데와 함께 행복한 여생을 보내게 된다.
김태헌은 자신의 ‘천일야화(千一夜畵)’를 “왕과 하룻밤 잠자리를 하고 죽을 처지였던 처녀 셰헤라자데가 샤리아 왕에게 들려준 천 하룻밤의 이야기는 아니다”라면, “‘그런 질문’은 천일야화(千一夜話)처럼 목숨을 건 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의 ‘그런 질문’은 무엇일까?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그런 질문’은 “그저 그런 질문을 반복적으로 하는 지루하고 따분한 이야기다. 대신 매번 다른 질문이기를 스스로에게 약속하며 천 개의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가보기로 했다. 인생의 많은 답은 좋은 질문 속에 있다. 나는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매끈한 직선이 아닌, 대지의 선물인 곡선을 따라 걸으며 나와 세상 사이에 무한접점을 만든다. 거기엔 수다 같은 그렇고 그런 질문과 느리게 쌓이는 4호 작업이 있다. 인생의 많은 답은 좋은 질문 속에 있다. 아쉽게도 나의 질문은 무디어 핵심을 찌르지 못한다. 그래도 매일 바보 같은 질문을 하며 어제와 다른 나를 불러 세운다.”
김태헌의 ‘천일야화(千一夜畵)’는 4호 캔버스에 천 개의 그림을 목표로 작업하는 일종의 ‘천 점 프로젝트’이다. 그는 이번 갤러리 R 개인전 『그런 질문』에 4호 그림 659점과 크기와 표현방식이 서로 다른 17점을 선보인다. 결국 그는 이번 개인전에 총 726점을 전시한 셈이다. 따라서 그의 ‘천 점 프로젝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태헌_질문 없습니다_작자 미상의 산수화에 혼합재료_24x33cm. 2025
질문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갤러리 R을 방문한다면, 당신은 텅 빈 전시공간을 만나게 된다. 아니다! 당신이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먼발치의 벽면에 작은 그림 한 점을 보게 될 것이다. 아니, 7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고 했는데, 갤러리 입구에서 본 전시장에 단 한 점의 작품만 전시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일단 나는 그 작은 그림으로 다가가 본다. 그것은 4호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다. 아니다! 그것은 캔버스가 아니라 한지에 그린 산수화이다. 그것은 산들과 높낮이가 다른 두 개의 폭포수를 배경으로 지팡이를 잡은 노인과 부채를 잡고 졸고 있는 동자를 출현시켜 놓았다.

김태헌_질문 없습니다_작자 미상의 산수화에 혼합재료_24x33cm. 2025
오잉? 김태헌이 산수화에도 입문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당신이 그림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간다면, 그것이 수묵으로 그린 산수화에 덧칠한 것임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수묵으로 그린 산수화는 김태헌이 그린 그림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김태헌은 코베이옥션(KOBAY Auction)에서 작자 미상의 산수화를 구매했다고 한다. 그는 작자 미상의 산수화에 채색한다. 우선 그는 산들 사이로 흘러내리는 두 개의 폭포수에 흰 아크릴물감으로 칠해 놓았다. 그리고 그는 산들 뒤로 거대한 4개의 산을 첨가해 놓았다. 물론 그는 여백으로 처리된 하늘을 푸른색 아크릴물감으로 그려 놓았다.
머시라? 화면 중간에 묘한 가랜드가 설치되어 있다고요? 그렇다! 김태헌은 수묵화에 끈에 매달린 분홍색 삼각 가랜드를 설치해 놓고 ‘질문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어놓았다. 가랜드는 흔히 파티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일종의 데코레이션이다. 우리는 가랜드를 흔히 생일파티나 각종 축하파티의 인테리어 용도로 사용한다.
‘질문 없습니다’ 가랜드 밑에 동자가 손에 부채를 잡고 졸고 있다. 동자 앞에는 주전자가 놓여 있다. 주전자는 불 피우는 풍로(風爐) 위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주전자는 약을 달이는 데 사용하는 ‘약탕기(藥湯器)’ 대용이란 말인가?
졸고 있는 동자 뒤편에는 수염이 난 노인이 지팡이를 잡고 괴석에 앉아 있다. 노인 머리 위에는 소나무가 있다. 그렇다면 소나무의 그늘진 곳에서 노인은 달여진 약을 기대라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김태헌은 동자 머리 위에 ‘질문 없습니다’란 문구를 적어놓았다.
와이? 왜 김태헌은 졸고 있는 동자 머리 위에 ‘질문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어놓은 것일까? 뭬야? 작가는 노인과 동자의 모습을 보고 그 문구를 적은 것 같다고요? 네? 노인이 동자에게 ‘질문 있느냐?’고 묻고, 동자는 졸음으로 ‘질문 없습니다’라고 답변한 것 같다고요? 김태헌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묻지도 따지지도 마라.‘ 살다 보면 그러고 싶어질 때가 있다. 많은 시간 나는 묻고 따지며 살아왔다. 이젠 묻고 따지는 일을 줄이며 살고 싶다. 그런데 어디 그런가. 매 순간 세상이 요동치니 거기서 중심을 잡자면 묻고 따져야 하루를 건널 수 있다.”
작품에 손대지 마세요!
나는 김태헌의 <질문 없습니다>(2025)를 보고 몸을 돌렸다. 헉!!! 거대한 벽면에 책꽂이들을 설치해 놓은 것이 아닌가! 28개의 책꽂이에 수백 권의 책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나는 책꽂이에 있는 책들이 궁금해 책꽂이로 한 걸음 다가선다. 오잉? 그것은 책이 아니라 그림들이 아닌가!

김태헌_천일야화(千一夜畵)_28개의 그림꽂이에 4호 크기의 그림 659점. 갤러리 R 전시광경. 2026
김태헌은 책을 꽂아 보관하는 작은 수납장인 책꽂이에 책이 아니라 그림들을 꽂아 놓았다. 따라서 그것은 일종의 ’그림꽂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28개의 그림꽂이에 4호 크기의 그림 659점을 연출해 놓았다. 왜 그는 4호 크기의 화면에 그림을 그린 것일까?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아무도 없는 산길을 갈 때 막대기 하나 손에 쥐고 걸으면 의지가 된다. 길고 지루한 인생길에 막대기 하나쯤 있으면 의지가 되는데 4호 그림이 그렇다. 캔버스 4호는 구멍난 녹색 수술포다. 구멍의 크기는 24.2×33.4cm이다. 그곳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내 안을 들여다본다. 하루에 한 번 24.2×33.4cm 구멍에 집중하며, 앞서 본 구멍들을 퍼즐처럼 맞추며 세상과 나를 알아간다. 지금까지 그려 놓은 그림을 맞춰보지만,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10년간 매일 하나씩 집중하며 그려가다 보면 뭔가 내 앞에 살짝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왜 김태헌은 그림들을 벽면에 전시하지 않고 그림꽂이에 연출해 놓은 것일까? 만약 그가 659점을 전시장 벽면에 모조리 전시해 놓았다면, 관객은 그 수많은 작품을 어떻게 보아야만 할지 혼란스러워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는 마치 양파껍질을 까듯이 관객이 그림꽂이에서 그림을 한 점씩 꺼내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림꽂이들이 있는 맞은 편 벽면에 다음과 같은 ’작품 관람 방식‘에 대한 안내문이 제공되어 있다.

‘작품 관람 방식’ 안내문
김태헌은 수백 점의 작품을 큐알 코드로 볼 수 있도록 설정해 놓았다. 관객이 핸폰으로 안내문 하단에 제공된 큐알 코드를 인식하면 659점 작품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만약 관객이 작품을 직접 보고 싶다면 작품 이미지에 적힌 고유 번호(number)를 큐레이터에게 전달하면, 큐레이터가 그림꽂이에서 작품을 꺼내 관객에게 보여준단다.
머시라? 작품 관람이 까다롭다고요? 기존 전시회는 작품들이 전시장에 ’펼쳐져‘ 있어 관객이 편리하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데, 김태헌의 작품 관람 방식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준다고요? 그것은 어느 면에서 마치 ‘전시회 이전의 전시회’처럼 느껴진다. 이를테면 그의 작품 관람 방식은 기존의 전시회 형식을 뒤집은 것이라고 말이다.
와이? 왜 김태헌은 관객에게 불편한 작품 관람을 요구하는 것일까? 내가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관객에게 마치 물량공세(物量攻勢)를 퍼붓듯 작품들을 펼쳐놓은 전시회가 아닌 ‘그림을 한 점씩 꺼내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란 말인가? 이인현 작가는 사석에서 ‘이미지의 횡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작가는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에게 작품을 보도록 강요하지요. 거꾸로 작가는 관객에게 작품을 보여주어야만 하는 공포에 휩싸이는데, 만약 작가가 관객에게 작품을 안 보여준다면 전시하는데 공포가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다음 전시에 그림을 둘둘 말아놓은 방식을 차용하고 싶습니다.”
김태헌은 650여 점의 작품을 전시장에 ’펼쳐놓지‘ 않고, 우선 관객이 큐알 코드를 통해 복사본을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물론 관객은 원작을 직접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관객이 원작을 직접 보고 싶다면, 관객이 직접 그림꽂이에서 작품을 꺼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복사본에 제공된 고유 번호를 갤러리 R 큐레이터에게 말해야만 한다.
김태헌은 그림꽂이에 꽂은 모든 작품 측면에 고유 번호를 적어놓았다. 그리고 그 고유 번호 위에는 검정과 빨강 표시를 해놓았다. 특히 검정 표시(●)는 작품에 오브제가 접목된 작품을 뜻한다고 한다. 따라서 그림꽂이에서 그림을 꺼낼 때 주의해야만 할 것 같다. 자칫하면 작품에 부착된 오브제가 떨어지거나 파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브제가 부착되지 않은 그림도 그림꽂이에서 꺼냈다/집어넣기를 반복하면서 그림 표면에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왜 김태헌이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었는지 이해하셨나요?
김태헌의 ‘아버지와 수석’ 시리즈
나는 거대한 벽면에 4호 크기의 659점을 꽂은 28개의 그림꽂이를 보고 다음 벽면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 벽면에는 4호 크기의 그림 3점이 옆으로 나란히 연출되어 있다. 그의 <아버지와 수석 I>(2023)과 <당신의 풍경>(2025) 그리고 <연주 그리다>(2025)가 그것이다. 그렇다! 그 3점은 그림꽂이에서 꺼내 벽면에 설치한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의 <질문 없습니다> 역시 그림꽂이에서 꺼낸 그림이다. 따라서 그림꽂이에 꽂힌 작품은 총 663점인 셈이다.

左) 김태헌_당신의 풍경_캔버스에 아크릴_24x33cm. 2025
中) 김태헌_아버지와 수석 I_캔버스에 아크릴_24x33cm. 2023
右) 김태헌_연주 그리다_캔버스에 아크릴_24x33cm. 2025

김태헌_아버지와 수석 I_캔버스에 아크릴_24x33cm. 2023
김태헌의 <아버지와 수석 I>은 수석 위에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체조선수를 그린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마치 구름 같은 하얀 이미지들을 그려 놓았다. 도대체 수석과 체조선수는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2022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 중 아버지 젊은 시절 모았던 수석을 무갑리 작업실로 가져왔다. 작업실에 들어온 수석을 가끔 바라보며 내 기억 속의 아버지를 하나씩 애써 더듬어 보았다. 아버지 꿈은 체조선수였다. 아침마다 어린 나와 동생을 깨워 운동을 시켰던 아버지는 주로 평행봉과 철봉을 즐겼고,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텀블링을 했다. 수석에 그린 체조선수는 그런 아버지의 꿈이다. ‘아버지와 수석’ 연작은 내가 본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김태헌은 아버지 꿈이 체조선수였지만, “아버지는 농사일로 인해 꿈을 이루시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는 오랜 기간 수집하셨던 아버지의 수석을 보면서 아버지의 꿈을 생각한다. 그의 <아버지와 수석 II>(2023)는 수석 위에 붉은 결정체를 그려 놓은 그림이다. 만약 당신이 그의 <아버지와 수석 I>을 참조한다면, 수석 위의 결정체가 그의 아버지께서 이루지 못한 꿈을 그림(결정체)으로 이루게 한 것임을 추론할 수 있겠다. 나는 그의 <아버지와 수석> 시리즈를 보면서 문득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를 떠 올렸다.
“늙으면 추억이 밥이다.”
이번에는 김태헌의 <당신의 풍경>을 보도록 하자. 그것은 초록색으로 뒤 덥힌 울창한 숲을 그린 풍경화이다. 머시라? 다양한 나무들은 무슨 나무냐고요? 뭬야? 전경에 노란 꽃도 있는데, 그 꽃은 무엇이냐고요? 내가 식물에 대해 무지해서 김태헌에게 카톡으로 물었다. 그의 답변이다.

김태헌_당신의 풍경_캔버스에 아크릴_24x33cm. 2025
“멀리 있는 나무들은 영은미술관 울타리 것들이고, 앞의 것은 경안천변 식물들입니다. 앞에 것은 넝쿨이 뒤덮어 있어 알 수 없는데, 봄이 되면 하얀 조팝꽃과 노란 개나리가 주로 피어납니다. 영은미술관 마당에는 하얀 목련, 벚꽃이 보입니다. 그 사이로 커다란 낙엽송과 참나무, 단풍나무가 보이고요.”
그렇다면 김태헌의 <당신의 풍경>은 영은미술관 맞은편에서 보고 그린 것이 아닐까? 물론 그의 그림에는 영은미술관이 등장하지 않는다. 영은미술관은 경기도 광주시 청석로의 자연림 안에 위치해 있다. 영은미술관 앞으로는 경안천(慶安川)이 흐르고 뒤로는 잣나무 군락이 조성되어 있다.
김태헌은 <당신의 풍경>을 ‘어머니께서 사시는 아파트에서 바라본 풍경’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어머니가 사시는 아파트 앞에는 경안천이 흐르고 낮은 산과 숲 너머에 영은미술관이 있는 셈이다. 따라서 그의 <당신의 풍경>은 경안천변 식물에서 숲까지 그려진 셈이다. 네? 작품 제목 <당신의 풍경>에서 ‘당신’이 바로 김태헌 작가의 어머니를 지시하는 것 같다고요? 김태헌은 어머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최근 몇 년 노모와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당신의 과거 속으로 초대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당신이 쏟아내는 대부분의 추억은 가난하고 모질었던 세월 속에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무시다. 그러고 보니 나도 가족을 생각하면 떠올릴 좋은 추억이 희미하다. 아버지와 남동생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나의 노후의 한 장면이 될 게 분명하고, 한 맺힌 어머니의 이야기들 역시 내 안에 이식되어 씁쓸한 추억으로 남게 될 게 불 보듯 하다. 나는 노구인 어머니를 많이 괴롭히고 있다. 불편한 몸을 끌고 다니며 외식도 하고, 풍경 좋은 커피점도 가고, 쇼핑도 하고, 함께 전시도 하며 추억을 만들고 있다. 남은 여정에 좋은 기억 하나라도 남겨 드리고 싶어서며, 어느 날 내게 들이닥칠 그날이 오면 당신에 대한 좋은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서다. 그림은 어머니 사는 아파트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김태헌의 ‘연주 그리다’
자, 이번에는 김태헌의 <연주 그리다>를 보도록 하자. 그것은 어느 젊은 여자를 그린 그림이다. 그의 <아버지와 수석 I>이 정물화(靜物畵)라면, 그의 <당신의 풍경>은 풍경화(風景畵)이고, 그의 <연주 그리다>는 인물화(人物畵)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그의 <연주 그리다>는 사람을 그린 넓은 의미에서의 인물화라기보다 오히려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초상화(portrait)’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김태헌은 초상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김태헌_연주 그리다_캔버스에 아크릴_24x33cm. 2025
“17세기 네덜란드 대표화가 렘브란트는 어린 나이에 초상화로 명성을 날리며 승승장구한다. 그는 빛의 마술사, 자화상 시리즈 등으로 서양미술사의 커다란 획을 긋고도 주문받은 ‘야경’ 이후 주문이 끊기면서 결국 파산하게 된다. 당시 초상화 제작의 관례였던 객관성을 깨고 작가의 주관성을 화면에 담은 게 화근이 되었다. 거기다 평소 낭비벽이 심했던 생활이 그를 불행한 말년으로 끌고 갔다.”
두말할 것도 없이 렘브란트 이후의 화가는 작가의 의도를 담은 초상화를 그린다. 그렇다면 김태헌의 <연주 그리다>는 어떤 작가의 의도가 담긴 것일까? 여자는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다. 머시라? 그녀가 머리에 착용한 것은 모자가 아니라 외려 헤어밴드(headband)로 보인다고요? 그녀는 줄무늬 카라티(polo shirt)를 입고 있다. 미소를 머금은 여자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아래로 시선을 던지고 있다. 그녀는 무엇을 보고 있길래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일까?
뭬야? 작품 제목 <연주 그리다>에서 ‘연주’가 누구냐고요? ‘연주’는 작가 김태헌의 부인 이름이다. 따라서 그의 <연주 그리다>는 부인의 초상화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부인의 의뢰를 받아 그린 ‘초상화’냐고요? 김태헌의 진술을 들어보자.
“작품은 연주 어렸을 때 모습이다. 빛바랜 작은 컬러사진에 있는 얼굴을 보고 그렸다. 살면서 얼굴을 그려 줄 테니 모델을 서달라고 몇 번 부탁했다가 매번 거절당하고 난 뒤론 포기했다. 대신 이렇게 사진을 보고 몇 점 그린 게 전부다. 닮게 그리려고 애쓰지 않았고 느낌에 집중하며 그렸다. 자신의 얼굴을 알아본 그녀는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김태헌은 <연주 그리다>를 ‘연주 어렸을 때 모습’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10대 소녀의 모습을 그린 것일까? 그런데 김태헌은 그녀를 명료하게 그리지 않고 마치 기억의 이미지처럼 몽롱하게 표현해 놓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연주 그리다>는 10대 소녀라기보다 20대 처녀의 모습으로 느껴진다.
김태헌은 ‘빛바랜 작은 컬러사진에 있는 얼굴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사진 속의 이미지를 ‘닮게 그리려고 애쓰지 않았고 느낌에 집중하며 그렸다’고 한다. 그러면 그는 ‘빛바랜 작은 컬러사진에 있는 얼굴을 보고’ 무엇을 느낀 것일까? 혹 그는 사진 이미지 ‘뒤’의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기라도 한 것이란 말인가?
화가가 특정 인물의 초상을 그린다는 것은 그 인물을 은유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화가가 아무리 인물에 접근하여 리얼하게 그린다고 하더라도 은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김태헌은 연주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 아닌가?
그래도 ‘그런 질문’은 계속된다
만약 당신이 28개의 그림꽂이에 꽂힌 김태헌의 ‘천일야화(千一夜畵)’를 모조리 꺼내 본다면, 그것이 가족에서부터 친구 그리고 동료나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의 ‘천일야화’가 사회나 정치 그리고 경제나 문화 전반을 자신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제작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의 ‘천일야화’는 일종의 ‘거대한 자화상’이 아닌가?

김태헌_그런 질문_갤러리 R 전시광경. 2026
김태헌의 ‘천일야화’에는 길을 그린 그림이 종종 등장한다. 그의 <같은 길보다 다른 길>(2023)과 <모든 게 길이다>(2023) 그리고 <꼬부랑길>(2023)이 그것이다. 그의 <같은 길보다 다른 길>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주목한다. 그의 <모든 게 길이다>는 마치 사방으로 핀 난초의 방향처럼 다양한 길로 열려 있다. 그의 <꼬부랑길>은 손금을 그린 것이다.
손금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 및 과거와 현재를 판단하고, 그것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등 사람의 일생을 파악하는 것을 ‘수상(手相)’이라고 한다. 그런데 김태헌이 그린 ‘손금’은 제목 그대로 ‘꼬부랑길’이다. 그는 “직선보다 곡선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런 질문’은 샛길이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그 길은 길 아닌 길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그런 길은 보이지도 않고 보이더라도 잠깐 눈길만 줄뿐 멈춰 서거나 발길을 들여놓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그 길은 일탈이며 시간 낭비일 뿐이다. 나는 어린아이 때부터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그리고 커서는 학교에서 알려주는 주입식 교육에 흥미를 잃고 멍하니 잡생각에 빠졌다. 이후로도 질문이 없는 교육 사이에서 잡생각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잡생각이 나의 길이 되었고, 그 길에서 호기심을 갖고 작업에 빠졌다.”
김태헌의 ‘천일야화’에는 <잡념(雜念) 꽃이 피다>(2023)라는 그림이 있다. 그것은 꽃들이 만발한 나무를 그린 그림이다. 김태헌은 그림 하단에 ‘잡념(雜念) 꽃이 피다’라고 적었다. 잡념은 여러 가지 잡스러운 생각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흔히 ‘잡념을 떨쳐버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잡념을 ’수행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옳지 못한 생각‘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김태헌은 사방으로 자란 나뭇가지들에서 피어난 꽃들을 잡념에 비유해 놓았다. 그러면 그에게 잡념은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그런가 하면 그는 '그런 질문'을 물수제비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한가로이 강가를 걷다 둥글고 납작한 작은 돌을 찾아 힘껏 던지면 수면 위를 날다 이내 가라앉는 것처럼 그런 질문이 꼭 그렇다. 운이 좋으면 물수제비가 한참을 미끄러지듯 그런 질문도 일상의 무언가를 건져 올릴 수도 있다. 흔적 놀이는 물수제비 놀이처럼 아침부터 하릴없이 멍 때리다 텅 빈 캔버스에 끄적거린 무엇이다. 이걸 뭐라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이대로 좋다.”
김태헌의 ‘천일야화’에는 ‘스마일’ 시리즈도 있다. 그는 붉은 인물이 스마일 풍선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걱정마라!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사람이 스마일들을 발 위에 그리고 팔 안에 또한 등에 메고 있는 모습을 그려 놓기도 한다. 급기야 그는 마치 ‘행복 전도사’처럼 소방관이 호수로 스마일들을 뿌리는 그림을 그린다.
김태헌의 ‘천일야화’는 까다로운 관객/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잠언(箴言)과 잠화(箴畵)로 표현되어 있다. 그의 ‘천일야화’는 낯익은 것들을 ‘낯설듯 새롭게 칼날을 세운 것’으로 그려/적어놓는다. 따라서 그의 ‘천일야화’는 언뜻 보기에 쉽게 다가오지만 이내 곱씹게 한다. 그렇다면 관객/독자는 그가 제안하는 삶의 지혜를 곱씹어야만 하지 않을까? 그의 진술을 들어보자.
“집을 나선 순례자들은 길 위에서 인생의 답을 듣는다. 그렇다면 그 길이 끝난 후엔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 아마도 길이 끝나면 거기엔 또 다른 길이 기다리듯, 뭔가 달콤쌉싸름한 새로운 인생의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질문’ 작업을 시작하면서 질문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 작업을 길 위에 던졌다. 그러자 등기우편으로 답을 보내왔다. 포장지를 뜯으니 그 안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그래도 질문은 계속된다. 그렇다. 아이같은 '그런 질문'은 노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어야 한다.”
새로운 미술 출판문화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자-도록(digital-catalogue)’
출판사 KAR은 이번 갤러리 R의 김태헌 개인전 『그런 질문』을 위해 작가의 ‘천일야화(千一夜畵)’ 시리즈(이미지)와 ‘작가노트’ 그리고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의 리뷰를 수록한 전자도록 『그런 질문』을 발행합니다. 출판사 KAR에서 발행한 전자도록은 온라인 서점들(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 리디북스, 밀리의 서재)에서 소장 가능합니다.

그런 질문
글쓴이 : 김태헌
출판사 : 케이에이알(KAR)
발행일 : 2026년 4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