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선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야

도수진 개인전

gallery R
서울특별시 성동구 광나루로 294 성동세무타워 B01호
TEL 02-6495-0001
e-mail galleryrkr@gmail.com

2026년 6월 20일 - 7월 25일

작가와의 대화 : 2026년 6월 20일(토) 오후 3시

전시오픈 :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픈시간 :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전시휴관 : 매주 일요일, 월요일
전시기획 : 갤러리 R 객원큐레이터 류병학

도수진 작가는 독일 뮌스터 예술대학(ACADEMY OF FINE ARTS MEUNSTER)에서 아카데미 브리프(석사)와 마이크 & 디억 뢰버트(Maik & Dirk Loebbert) 교수로부터 마이스터슐러(Meisterschuler)로 사사받고 한국으로 귀국한 작가입니다.

그녀가 국내외에서 개최한 개인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2년 독일 뮌스터 쿠바 쿨투어의 『텅 빈 방들(Empty Rooms)』과 프로젝트 하펜벡 22의 『Einsichten in Aussichten』 그리고 2013년 베베어카 파빌리온(Wewerka Pavillon)의 『Behind the Doors』과 2022년 인천 차 스튜디오(CHA studio)의 『곤충인간 / 昆蟲人間』 또한 2023년 갤러리 JY의 『Vertigo & Vertigo / 버티고 & 버티고』와 2026년 갤러리 R의 『이곳에선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야』입니다.

그녀는 다수의 국내외 그룹전에 초대되었습니다. 그녀가 해외에서 초대되었던 주요 그룹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2008년 독일 쿤스트 페어라인 겔젠 키르센의 『New Grass』, 2009년 독일 하노버 슈티프퉁 호리존테 쿤스트라움 44의 『so fern-so nah』, 독일 뮤지엄 슐로스 슈바르첸베르거의 『Schwarzenberger Kunstpreis art-figura』, 2010년 독일 루어 프로젝트 『Über Wasser gehen』, 2011년 독일 AZKM의 『Föderpreis 2011』, 독일 쿤스트 페어라인 알렌의 『The Temporary Institute of Retrospection』, 2012년 이탈리아 컨템포러리갤러리 메란의 『Die da ist mit der da da (...)_ES』, 독일 뒤셀도르프의 『KUNSTPUNKTE Düesseldorf 2012』, 2013년 예나 쿤스트 페어라인의 『Brandschutz』, 독일 두이스부룩 란트샤프츠 파크의 『Emscher Kunst 2013』, 독일 도르트문트 코커라이 한자의 『Emscher Kunst 2016』 등입니다.

그녀의 국내 주요 그룹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4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FOLLOW ME』, 송은아트스페이스의 『14th 송은미술대상』,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난지 전시실의 『Heavy Habit』, 2015년 울산 태화강 대공원의 『태화강 국제 설치 미술제』, 2016년 고양 아람누리 미술관의 『What is art?』, 소마미술관의 『야외 프로젝트 S』, 인천 Cosmo40 메인 홀의 『겹 물결 : Living Fragment』, 2024년 스페이스 테미의 『그리고, 그리고』, 갤러리 호호의 『가끔은 너의 위로가 필요해』 등을 국내 주요 그룹전으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수진 작가는 2014년 SeMA 난지 창작 스튜디오와 2015년 경기창작센터에 입주했습니다. 그녀는 2014년 송은아트스페이스의 ‘송은미술대상’과 2026년 갤러리 R의 케이에이알(KAR) 자화像/자화賞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이곳에선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야_갤러리 R 전시광경. 2026

도수진의 ‘이곳에선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야’

“But I don’t want to go among mad people,” Alice remarked.
“Oh, you can’t help that,” said the Cat:
“We’re all mad here. I’m mad. You’re mad.”
“How do you know I’m mad?” said Alice.
“You must be,” said the Cat, “or you wouldn’t have come here.”

“하지만 난 미친 사람들 틈에 가고 싶지 않은걸요.” 앨리스가 말했다.
“오, 그건 어쩔 수 없어.” 고양이가 말했다.
“여기선 우리 모두 미쳤거든. 나도 미쳤고, 너도 미쳤어.”
“제가 미쳤다는 걸 어떻게 아시는데요?” 앨리스가 물었다.
“분명 미쳤어.” 고양이가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네가 여기 올 리 없으니까.”

-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1865) 중에서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원문의 ‘mad’는 단순한 ‘광기’뿐 아니라, 이상하고 기묘하며 터무니없이 비논리적인 것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나는 “We’re all mad here”를 “이곳에선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야”로 번역해 보았다.

갤러리 R(황영배 대표)의 도수진 개인전 『이곳에선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야』는 전시 타이틀에서 암시하듯이 ‘이상한 나라에서의 모험’에 관한 작품들로 구성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이상한 나라’는 상상의 세계라기보다 오히려 현실과 비현실 혹은 실재와 환상이 서로 뒤섞인 ‘예술의 세계’를 뜻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Dance of Death_인형, 모터, 라디오, 조 명_가변크기. 2023

The Eyes_나무, 모터, 스티로폼_가변크기. 2021/2026

도수진은 이번 갤러리 R 개인전에 다양한 장르의 작품 44점을 선보입니다. 장지에 먹으로 작업한 드로잉 <마지막 행진 / Last Parade>(2025) 시리즈 30점과 장지에 채색한 회화 <이.모.제.아(이곳에선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야)>(2026) 시리즈 4점,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으로 작업한 <자기파괴클럽>(2026), 스티로폼과 인형으로 작업한 설치작품 <복사꽃이 피어있는 세계로의 꿈속 여행(Dream Journey to the Peach Blossom Land)>(2026), 신작 오브제 작품 3점(<자식을 먹는 사투르누스(Saturn Devouring His Son)>, <천흉국(穿胸國)>, <바쿠(Baku)>), 키네틱 작품 2점(<더 아이즈(The Eyes)>, <죽음의 춤(Dance of Death)>), 신작 애니메이션 3점(<오 보이저(Oh Voyager)>, <빙글빙글(bingle bingle)>, <영원의 복숭아(Eternal Peach)>)이 그것입니다. 자, 그럼 도수진의 ‘이상한 예술의 나라’로 들어가 보자.

마지막 행진 / Last Parade 01_장지에 먹_42x59.4cm. 2025

‘마지막 행진(Last Parade)’ 시리즈 : 뒤죽박죽된 현실과 비현실의 퍼레이드

도수진의 드로잉 <마지막 행진(Last Parade)>(2025) 시리즈 30점은 인간뿐만 아니라 인형들 그리고 동물 등 다양한 이미지들의 행진을 그린 일종의 ’퍼레이드-드로잉(parade-drawing)‘이다. 물류센터에서 만원의 시급을 받고 일하는 세종대왕’들‘에서부터 2012년 콜로라도 극장의 총기 난사 사건을 연상시키는 배트맨 의상을 입고 총을 난사하는 곰 인형이나 부서지는 거대한 큐피 조각상 그리고 ’레테의 강‘에서 주스를 마시는 토끼까지 현실과 비현실을 뒤섞어 놓았다.

그 점에 관해 도수진은 “살아오는 과정에서 마주한 수많은 사건과 감정이 무의식 속에서 환영이 되어 새롭게 부활”한 것이라면서, 그 “환영들은 거리를 행진하듯 화면 밖으로 밀고 나와 긴 행렬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녀의 <마지막 행진>은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가 뒤죽박죽 섞이며 펼쳐지는 판타지를 그린 드로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도수진은 흥미롭게도 그 환영 이미지들을 ’퍼레이드‘ 형식을 빌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집단 무의식처럼 연출해 놓았다.

이.모.제.아_장지에 분채(粉彩)_130x194cm. 2026

’이.모.제.아‘ 시리즈와 ’자기파괴클럽‘ : 집단 무의식의 욕망

도수진의 드로잉 <마지막 행진>이 장지에 먹으로 그린 드로잉이라면, 그녀의 <이.모.제.아(이곳에선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야)>(2026) 시리즈 4점은 장지에 분채(粉彩)로 그린 그림이고, 그녀의 <자기파괴클럽>(2026)은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회화이다. 그녀의 <이.모.제.아>와 <자기파괴클럽>은 120호 크기에 기이한 이미지들의 집단 무의식의 욕망을 뒤섞어 놓았다.

’돼지-인간‘과 ’잠자리-소년‘ 그리고 ’사마귀-인간‘과 ’바퀴벌레-인간‘ 또한 ’달팽이-인간‘과 ’거미-인간‘ 등이 그것이다. 혹 그녀는 ’동물-인간‘이나 ’곤충-인간‘을 통해 하나의 몸을 가진 두 개의 자아(의식과 무의식)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거‘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자기파괴클럽_캔버스에 아크릴_130x194cm. 2026

도수진은 기이한 캐릭터들을 “우리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밝고 귀여운 캐릭터들”로 캐스팅해 놓았다. 그런데 그 캐릭터들은 물욕과 성욕 그리고 식욕 등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고통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녀는 그들을 “사회 시스템 속으로 기꺼이 소모 시키며, 저항 없이 미소 짓게 한다.”

와이? 왜 그녀는 <이.모.제.아>와 <자기파괴클럽>에 고통을 은폐한 것일까? 그녀는 “겉으로는 완벽히 행복해 보이는 이 세계에서 고통은 삭제되거나 포장되어 있다”면서, 하지만 “그 보이지 않음이야말로 진짜 고통의 형태”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화려한 풍경은 역설적으로, 고통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운 오늘날의 세계를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右) 천흉국(穿胸國)_인형, 나무_14x17x19cm(d). 2026
中) 자식을 먹는 사투르누스(Saturn Devouring His Son)_인형_12x53x11cm(d). 2026
左) 바쿠(Baku)_인형_12x17x21cm(d). 2026

도수진의 ’자식을 먹는 사투르누스(Saturn Devouring His Son)‘

자, 이번에는 도수진의 오브제 작품 3점을 보도록 하자. 그녀의 <자식을 먹는 사투르누스(Saturn Devouring His Son)>(2026)는 어미 닭이 자식 닭을 ’삼키는‘ 모습을 연출한 오브제 작품이다. 노란색 고무 재질의 닭 인형은 ’고무 닭(Rubber Chicken)‘ 혹은 ’비명 지르는 닭(Screaming Rubber Chicken)‘으로 불린다. 만약 당신이 ’비명 지르는 닭‘ 인형의 몸을 누르면 이름 그대로 기이한 비명을 낸다.


자식을 먹는 사투르누스(Saturn Devouring His Son)_인형_12x53x11cm(d). 2026

사투르누스(Saturn)? 그리스 신화에서 티탄족의 왕 크로노스(Kronos)는 자신의 자식이 자신을 몰아낼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그는 태어난 자식을 삼켜버린다. 이후 로마 신화에서 크로노스는 사투르누스(Saturnus, Saturn)로 변경된다. 이를테면 사투르누스는 크로노스를 로마 신화에서 라틴어 식으로 부르는 이름이라고 말이다.

로마 신화에서 테라(가이아)는 사투르누스(크로노스)가 마치 아버지인 카일루스(우라노스)를 타도한 것처럼 그의 아들 중 한 명이 자신을 타도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래서 사투르누스(크로노스)는 자식들이 태어나면 그들을 ’삼켜‘ 먹는다. 그러자 사투르누스(크로노스)의 아내 옵스(레아)는 그의 여섯 번째 아이이면서 셋째 아들인 주피터(제우스)를 크레타 섬에 숨기고, 그녀는 남편에게 포대기에 싸인 돌을 내놓아 속인다. 테라(가이아)의 예언대로 주피터(제우스)는 그의 아버지 사투르누스를 대신하게 된다.

머시라? 당신은 도수진의 <자식을 먹는 사투르누스>를 보면서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y Lucientes)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Saturno devorando a su hijo)>(1820~1823년경)를 떠올렸다고요? 원래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는 1820년과 1823년 사이에 그의 집인 ’귀머거리의 집(Quinta del Sordo)‘ 벽에 직접 그린 14점의 벽화 <검은 그림들(pinturas negras)> 중 한 점이라고 한다.

현재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야의 회화 <자식을 먹는 사투르누스>는 손상되어 벽에서 깎아내 캔버스에 옮겨진 것이라고 한다. 당시 복원은 살바도르 마르티네스 쿠벨스(Salvador Martinez Cubells)가 했는데, 이후 복원된 그림에 복원자의 수정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벽화 <자식을 먹는 사투르누스>의 복원 전 사진에는 사투르누스의 남근이 발기된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복원된 그림에는 남근이 삭제되어 있다.

고야의 <자식을 먹는 사투르누스>는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등장한 듯한 인물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크게 벌려 두 손으로 알몸의 인간을 잡고 왼팔을 물어뜯고 있다. 알몸 인물은 머리와 오른팔이 없고 그곳에 피가 흥건하다는 점에서 이미 사투르누스에게 먹힌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고야의 사투르누스는 마치 광기에 사로잡힌 괴물처럼 보인다.

신화에서 장성한 주피터(제우스)가 아버지 사투르누스(크로노스)에게 몰래 구토를 유발하는 약을 먹인다. 그래서 사투르누스(크로노스) 배 속에 있던 주피터(제우스)의 형제자매인 플루토(하데스)와 넵투누스(포세이돈) 등이 밖으로 튀어나온다. 주피터(제우스)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아버지 사투르누스(크로노스)와 싸워 무찔러 왕좌에 오른다.

나는 지나가면서 사투르누스(크로노스)가 자식들이 태어나면 그들을 ’삼켜‘ 먹었다고 중얼거렸다. 이를테면 사투르누스(크로노스)가 자식들을 씹어먹었다기보다 꿀꺽 삼켰다고 말이다. 하지만 고야의 사투르누스(크로노스)는 살아있는 사람을 삼켰다기보다 차라리 (이미 머리가 없는) 시체를 씹어먹고 있다. 따라서 혹자는 고야의 <자식을 먹는 사투르누스>는 제목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고야는 ’귀머거리의 집‘ 벽에 그린 벽화들에 제목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자식을 먹는 사투르누스>라는 제목은 고야가 죽은 후 다른 이가 제목을 붙인 것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혹자는 <자식을 먹는 사투르누스>라는 제목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도수진의 <자식을 먹는 사투르누스>는 고야의 <자식을 먹는 사투르누스>와 달리 어미 닭이 자식 닭을 ’삼키고‘ 있다. ’비명 지르는 닭‘의 목은 길게 늘어나 있고, 얼굴 표정은 과장되어 있으며, 두 눈은 마치 경악스러운 듯 튀어나와 있고, 다리는 축 늘어져 있다. 그리고 ’비명 지르는 닭‘의 몸은 인공적인 노란색이고, 닭의 벼슬과 입 그리고 목 리본은 붉은색으로 채색되어 있어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도수진은 ’비명 지르는 닭‘을 선반 끝에 걸터앉은 것으로 연출해 마치 사람처럼 보이도록 해놓았다. 따라서 그것은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어미 닭이 자식 닭을 먹는다는 점에서 경악스럽기도 하다. 이를테면 그것은 삶과 죽음, 희극과 비극 사이를 오가는 양가적 의미로 읽힌다고 말이다. 뭬야? 지가 눈에는 어미 닭이 자식 닭은 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토해내는 것 같다고요?


천흉국(穿胸國)_인형, 나무_14x17x19cm(d). 2026

도수진의 ’천흉국(穿胸國)‘

자, 이번에는 도수진의 <천흉국(穿胸國)>(2026)을 보도록 하자. 그것은 3개의 큐피(Kewpie) 인형이 서로를 운반하는 모습을 연출한 오브제 작품이다. 큐피 인형들의 가슴에 구멍이 나 있다. 그들은 구멍 난 가슴에 나무를 이용하여 서로를 운반한다. 네? ’천흉국(穿胸國)‘이 무슨 뜻이냐고요? '천흉국'은 중국 고대 신화집인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상상의 나라로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穿胸國
在盛海
東胸有
穿胸者
裹衣令
其衣人
竹木貫
胸檻之

머시라? 한문을 한글로 번역해 달라고요? 나도 그 한문 텍스트가 궁금해 인터넷을 서핑해 보았다. 내가 인터넷에서 찾은 번역문들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을 것 같다.

“가슴이 뚫린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있다 / 그들은 바다 동쪽에 사는데 / 사람들의 가슴에는 구멍이 뚫려있어 / 그 구멍에 대나무나 막대를 꿰어 / 서로 메고 다닌다 / 옷도 그 구조에 맞게 입는다.”

와이? 왜 천흉국 사람들의 가슴에 구멍이 뚫려있을까? 뭬야? 몸을 관통한 구멍이 인간의 내부와 외부를 잇는 통로로 보인다고요? 당신의 눈에는 그것이 상실과 결핍을 상징하는 것으로 느껴진다고요? 그것이 트라우마를 은유한 것으로 보인다고요? 자기 눈에는 그것이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2008) 사랑을 잃은 사람을 비유한 것으로 느껴진다고요?


바쿠(Baku)_인형_12x17x21cm(d). 2026

도수진의 ’바쿠(Baku)‘

자, 마지막으로 도수진의 <바쿠(Baku)>(2026)를 보자. 그것은 각종 인형을 접목하여 기인한 캐릭터를 제작한 작품이다. 몸은 아기 인형이고, 머리는 기린 다리고, 퓨마 머리가 오른팔을 대체하고, 얼룩말 꼬리가 왼쪽 다리에서 나오고, 엉덩이에는 사슴뿔이 박혀 있다. 도수진은 이 기이한 캐릭터를 ’바쿠‘로 부른다. 네? ’바쿠‘의 의미가 무엇이냐고요? 위키피디아는 ’바쿠‘ 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해 놓았다.

“바쿠는 중국으로부터 일본에 전해진 전설의 요괴이다. 사람의 꿈을 먹는다고 여겨지지만, 이 경우의 꿈은 장래의 희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렘 수면 상태에서 사람이 보는 꿈을 지칭한다. 악몽을 본 사람은 ’이 꿈을 바쿠에게 줍니다‘라고 말하면 그 후에 그 악몽을 다시 꾸지 않게 된다고 여겨졌다. 몸은 곰, 코는 코끼리, 눈은 코뿔소, 꼬리는 소, 다리는 호랑이의 것을 하고 있다고 여겨져왔는데, 이는 태초에 신이 동물을 창조하였을 때, 남은 동물들의 부위를 사용하여 바쿠를 창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도수진의 <바쿠>는 전설의 요괴 ’바쿠‘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전설의 ’바쿠‘가 여러 동물을 결합한 키메라(chimera)로 묘사되었다면, 도수진의 <바쿠>는 인간(아기 인형)의 몸에 여러 동물을 결합한 캐릭터이다. 물론 그녀의 <바쿠>는 버려진 인형들의 부위를 이용하여 ’창조‘한 것이다.

그런데 바쿠는 단순히 악몽만 먹는 존재가 아니란 점이다. 전설에 따르면 바쿠가 악몽을 먹고도 배가 고프면, 희망이나 소망 등 미래에 대한 꿈까지 먹어 버릴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바쿠는 공포를 제거하는 동시에 욕망과 열망도 먹을 수 있는 양면적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도수진의 <천흉국>이 결핍의 이미지(가슴의 구멍)라면, 그녀의 <바쿠>는 욕망(미래의 꿈)을 먹는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바쿠는 단순한 수호신이 아니라, 인간의 공포와 욕망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닌가? 혹자는 바쿠를 ’망각의 동물‘ 혹은 ’무의식을 청소하는 존재‘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면 꿈을 먹는 바쿠는 기억뿐만 아니라 욕망도 제거하는 것이 아닌가?

Dream Journey to the Peach Blossom Land_스티로폼, 인형_392x120x98cm(h). 2026

도수진의 ’몽유도원물(夢遊桃源物)‘

도수진의 설치작품 <복사꽃이 피어있는 세계로의 꿈속 여행(Dream Journey to the Peach Blossom Land)>(2026)은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1447)를 하얀 스티로폼으로 조각한 일종의 ’몽유도원물(夢遊桃源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는 백색 ’몽유도원물‘ 곳곳에 백색으로 채색한 수백 개에 달하는 작은 큐피를 연출해 놓았다. 한 무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는가 하면, 다른 무리는 누워서 마치 산처럼 쌓여있다. 백색 큐피들이 산처럼 쌓여있는 곳 옆에는 앰뷸런스 장난감이 놓여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무리는 장난감 탱크들과 함께 흩어져 쓰러져 있다. 또한 산봉우리에 장난감 비행기가 박혀 있다. 도대체 도수진의 ’몽유도원물‘은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일까?

1447년 세종 29년, 4월 20일 안평대군(安平大君)이 밤 자리에 누우니,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잠이 들어 꿈을 꾼다. 대군이 박팽년(朴彭年)과 함께 어느 산 아래 이르니, 겹겹이 산봉우리에 골짜기가 깊고 산세가 험준하고 그윽하였다. 복숭아꽃이 핀 나무가 수십 그루 있고 오솔길이 나 있는데 숲에 이르자 갈림길이 나왔다. 그들은 오솔길의 갈림길에서 서성이다가 소박한 옷차림의 한 사람을 우연히 만난다. 그 사람은 안평대군에게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고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골짜기에 들면 곧 도원(桃園)입니다“라고 말한다.

안평대군은 박팽년과 함께 말을 몰아 그곳을 찾아갔는데, 절벽 언덕길이 빼어나고 숲이 울창하게 우거졌으며, 계곡이 휘돌아 길도 돌며 모두 백번이나 꺾여서 희미해지려 한다. 그들이 계곡으로 들어가니 동굴이 있어, 동굴을 관통하니 탁 트인 마을이 나타난다. 사방이 산 절벽인데 구름과 안개로 가렸고, 멀고 가까운 복숭아 숲에 짙은 노을이 끼였다. 그리고 대나무 숲에 띠 풀로 엮은 집이 있는데, 사립문이 반쯤 열렸고 흙으로 된 섬돌은 이미 오래되었으며, 닭과 개, 소, 말은 없고 앞쪽 냇가에 오로지 작은 배가 있어 물결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정경이 고요하고 조용하여 마치 신선의 마을 같았다.

안평대군은 박팽년에게 “바위를 얽어매고 계곡을 뚫어 집을 짓는다는 게 이와 같지 않을까? 참으로 도원의 동네“라고 말한다. 인기척에 안평대군이 뒤를 보니, 신숙주(申叔舟)와 최항(崔恒)이 먼저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안평대군은 그들과 함께 신발을 가다듬고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돌아보며 즐기다가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다.

안평대군은 안견을 불러 자신이 꿈속에서 도원을 방문한 이야기를 전해 그림을 그리게 한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안평대군의 ’몽유도원‘이다. 도수진은 설치작품 <복사꽃이 피어있는 세계로의 꿈속 여행>에 텍스트 ’세 개의 꿈‘을 제공해 놓았다. 그녀의 텍스트는 단편소설 형식을 취한 일종의 ’작가노트‘이다.

도수진의 ’세 개의 꿈‘은 안평대군의 꿈과 안견의 꿈 그리고 소녀의 꿈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안평대군의 꿈‘은 지나가면서 간략하게나마 언급했던 우리에게 잘 알려진 꿈이다. 하지만 ’안견의 꿈‘과 ’소녀의 꿈‘은 도수진이 창작한 꿈이다. 그런데 그녀의 ’안견의 꿈‘은 안평대군의 꿈과는 판이하게 다른 꿈이란 점이다.

’안견의 꿈‘ 속에서 도원마을의 집은 불타고 있고, 골짜기는 핏빛으로 붉게 흐른다. 그리고 관복을 입은 이들이 쓰러져 있는데, 박팽년뿐만 아니라 성삼문(成三問)과 하위지(河緯地) 그리고 이개(李塏)와 유성원(柳誠源) 또한 유응부(兪應孚)... 등이다. ’안견의 꿈‘ 속에 등장한 이들은 다름아닌 사육신(死六臣)이 아닌가. 1456년(세조 2) 정창손(鄭昌孫)의 사위 김질(金礩)은 사육신을 단종 복위를 시도한 이들로 고발해 처형 당한다. 물론 박팽년은 의금부(義禁府)에 하옥되어 공초(供招)를 받다가 심한 고문 때문에 옥중에서 사망한다.

안견은 꿈속에서 안평대군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안견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다 쓰러진다. 그리고 그는 비명을 지르며 악몽에서 깨어난다. 안견은 악몽을 그린다. 그는 자신이 그린 ’악몽도(惡夢圖)‘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내가 본 대군의 꿈속 도원은 온통 피로 가득했다. 대군을 따르는 수많은 이들, 그들의 가족들이 그곳에 쓰러져 있었다는 것을 정녕 그림으로 전할 것인가? 그것은 화공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안견은 고민 끝에 다시 붓을 든다. 그는 쓰러진 수많은 몸을 안개로 덮었고, 피 묻은 길 위에 복사꽃을 그려 넣었다. 그는 죽임을 당한 사람들과 피로 물든 풍경을 모두 지운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려진 것이 바로 안견의 <몽유도원도>라고 말이다.

이번에는 ’소녀의 꿈‘을 보자. 소녀? 도수진은 안평대군이 오솔길의 갈림길에서 서성이다가 우연히 만난 소박한 옷차림의 한 사람을 ’소녀‘로 전이시킨다. 도원에 사는 소녀는 (꿈속의 꿈에서) 깨어난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바쁜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거울 바위들 사이로 모두가 흰 천을 귀에 걸어 입과 코를 가리고 지나간다.

소녀는 괴이한 가면을 쓴 끝없는 행렬들을 만난다. 좁은 골목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밀지 않으려 애썼지만 의도치 않게 서로를 밀고 있다. 사람들은 마치 도미노처럼 한 사람이 넘어지자 줄줄이 넘어지기 시작한다. 소녀는 수많은 비명을 들었고, 복사꽃잎처럼 흩어진 신발들을 보았다.

귀를 찢는 울음소리를 내며 쇠 짐승 떼가 달려왔다. 머리 위 뿔에서는 붉고 푸른빛을 번갈아 가며 번쩍였다. 그리고 소녀의 머리 위 하늘에는 커다란 새가 날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땅에 닿는 순간 찢어졌고 커다란 불길이 하늘을 덮었다. 멀리서는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다음으로 소녀가 본 것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사람들은 몸 없는 두뇌를 신으로 모셨다. 몸 없는 뇌는 손과 발도 없이 모든 것을 움직이고 사람들을 조정했다. 사람들은 또한 그들이 모시는 신이 되고자 했다. 영원히 늙지 않고 병들지 않는 신이 되길 원했다. 마치 자신이 사는 몽유도원에서처럼. 그러나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워 보였다. 소녀는 고통에 휩싸여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이것들은 어느 나라의 재앙입니까!” 누군가 대답했다. “아직 오지 않은 나라의 일이다.” 소녀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목에 건 흰 옥을 움켜쥐었다. 그런데 옥이 뜨거워 소녀는 비명을 지르며 꿈속에서 깨어난다.

아침이었다. 창밖에는 여전히 몽유도원이 있었다. 고통이 사라진 마을, 누구도 죽지 않는 마을. 복사꽃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계곡물은 맑게 흘렀다. 친구들은 밖에서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소녀는 천천히 문밖으로 나갔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소녀는 이전처럼 같은 눈으로 마을을 바라볼 수 없었다. 멀리 복사꽃이 보였다. 소녀는 꽃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가까이 갈수록 꽃잎은 하얀 사람들로 변했다. 눈처럼, 비석처럼, 무감각한 조각처럼 그들은 모두 새하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수진의 설치작품 <복사꽃이 피어있는 세계로의 꿈속 여행>은 안평대군의 꿈과 안견의 꿈을 거쳐 소녀의 꿈을 표현한 작품이다. 만약 그녀가 ’안견의 꿈‘을 쓰지 않았다면, ’소녀의 꿈‘은 비약된 것으로 느껴질 것 같다. 따라서 ’안견의 꿈‘은 ’안평대군의 꿈‘과 ’소녀의 꿈‘을 잇는 절묘한 한 수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그녀의 ’몽유도원물‘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모델로 삼아 하얀 스티로폼을 조각한 다음 곳곳에 백색으로 채색한 수백 개에 달하는 작은 큐피를 연출한 설치작품이다. 도대체 작은 큐피들로 이루어진 몇 가지 무리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소녀의 꿈‘에 나타난 흰 천을 귀에 걸어 입과 코를 가린 무리나 좁은 골목에서 한 사람이 넘어지자 마치 도미노처럼 줄줄이 넘어지기 시작한 무리 그리고 귀를 찢는 울음소리를 내며 쇠 짐승 떼나 소녀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거대한 새는 현실의 사건들을 암시한다. 도수진은 ’소녀의 꿈‘에서 보았던 사건들을 백색 ’몽유도원물‘ 곳곳에 연출해 놓았다.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는 무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연상시키고, 앰뷸런스 장난감 옆에 마치 산처럼 쌓여있는 백색 큐피들은 ’이태원 참사(梨泰院慘事)‘를 떠올리게 하며, 산봉우리에 장난감 비행기가 박혀 있는 모습이나 장난감 탱크들과 함께 흩어져 쓰러져 있는 무리는 전쟁을 암시한다.

왜 도수진은 ’몽유도원‘에 악몽을 표현해 놓았을까? 그녀의 설치작품 <복사꽃이 피어있는 세계로의 꿈속 여행>은 현실과 비현실이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란 말인가? 그녀는 천국과 지옥이 한 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녀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두 개의 세계를 대립이 아닌 하나의 ’몸‘으로 표현한 것이란 말인가? 천국과 지옥은 사후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右) 오 보이저(Oh Voyager)_싱글채널비디오_8min 27sec. 2026
中) 영원의 복숭아(Eternal Peach)_싱글채널비디오_5min 20sec. 2026
左) 빙글빙글(bingle bingle)_싱글채널비디오_1min 20sec. 2026

도수진의 ’오 보이저(Oh Voyager)‘

자, 마지막으로 도수진의 애니메이션 작품 3점을 보도록 하자. 그녀의 <오 보이저(Oh Voyager)>(2026)는 8분 27초 런닝타임의 영상작품이다. 그것은 Al 생성 시스템을 활용해 제작한 영상작품이다. 그녀는 영상을 제작하고 사운드 작업을 한 것이 아니라 우선 AI의 도움으로 음악을 제작했다고 한다. 물론 그녀는 음악 <오! 보이저>를 위해 먼저 작사를 직접 섰다. 그녀가 쓴 <오! 보이저> 작사는 다음과 같다.

오! 보이저

[Verse 1]

네 안에 담긴 record
고독을 숨긴 목소리
보이저 돌아올 수 없어
꺼져가는 작은 빛
그래도 너는 날아가
끝없는 밤 사이를
아무도 없는 우주를
혼자 건너가

[Chorus]

오 보이저 오 보이저
너와 날고 싶어
오 보이저 오 보이저
어둠 속이어도 괜찮아

[Verse 2]

많은 별들을 지나쳐
스쳐간 얼굴들
이름 없는 기억들
나를 여기 데려와
눈부신 record 속 목소리
아직 울리고 있어
너에게 닿을 때까지
내 귓가에 울리고 있어

[Chorus]

오 보이저 오 보이저
너와 날고 싶어
오 보이저 오 보이저
어둠 속이어도 괜찮아

[Outro]

우린 어디에
닿을 수 있을까

오 보이저(Oh Voyager)_싱글채널비디오_8min 27sec. 2026

도수진은 직접 쓴 작사를 바탕으로 작곡을 한다. 그녀는 “AI 작곡 시스템인 수노(Suno)를 사용해 생성하였다”면서, “1980년대 신스팝(Synth-Pop)과 드림팝(Dream Pop), 레트로 SF 사운드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고 진술한다. 그녀는 생성된 음악을 바탕으로 텍스트·이미지·기존 영상을 입력해 AI로 영상을 생성하고 편집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 크리에이티브 플랫폼인 런웨이(Runway)와 드리미나(Dreamina)에서 1980년대 일본 셀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이미지와 영상을 제작한다.

만약 당신이 도수진의 영상작품 <오 보이저>를 직접 보시면 알게 되겠지만, 영상이 끝나면 소설 형식을 빌린 일종의 ’작가노트‘가 나온다. 따라서 그녀의 영상작품 <오 보이저>는 영상과 음악 그리고 텍스트로 이루어진 일종의 ’현대판 시서화(詩書畵)‘라고 할 수 있겠다.

도수진의 영상 <오 보이저>는 오래된 흑백 TV 모니터로 시작한다. 그런데 TV 화면에 영상이 송출되기보다는 방해전파로 인한 듯 지지직거린다. 그러면서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그 사운드는 우주선 발사 사운드를 연상시킨다. 그 사운드에 관해 도수진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오 보이저>의 초반부에 실제 보이저 탐사선의 발사 장면 사운드를 사용하였습니다. 유튜브에 공개된 실제 보이저 탐사선 발사 영상에서 음성을 추출한 후 영상의 첫 장면에 삽입했던 것이죠.”

미국의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1961년 5월 25일 국회에서 “1960년대 안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연설을 통해 달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최초로 언급한다. 미국 NASA는 아폴로 달 프로그램 이후 관심을 행성으로 옮긴다. 1965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우즈 홀에서 과학자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그 아이디어들 중 ’그랜드 투어(Grand Tour)‘ 아이디어가 있다.

그랜드 투어는 175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독특한 행성 정렬을 이용해 목성에서 명왕성에 이르는 5개의 외곽 행성 모두에 여러 대의 우주선을 보내자는 아이디어이다. 그런데 그랜드 투어 계획은 1976년과 1980년 사이에 우주선을 발사해야 했다. 그래서 보이저 2호는 1977년 8월 20일에 발사되었고, 보이저 1호는 1977년 9월 5일에 발사되었다. 발사 순서를 반대로 하기로 한 결정은 천왕성, 해왕성 탐사 및 그랜드 투어 임무의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서였다. 현재 보이저는 춥고 어두운 먼 우주에서 아직도 여행하고 있다.

자, 도수진의 <오 보이저> 영상을 보자. 영상 시작은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보이저 탐사선 발사 장면에서 영상을 삭제한 음성(파이브, 퍼, 쓰리, 투, 원이라는 목소리)만 들려준다. 그리고 핵폭발 장면과 공중으로 흩어지는 장난감들 그리고 천천히 회전하는 (소녀의 얼굴을 한) 달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그녀는 특히 핵폭발 장면에 대해서 “인간 욕망의 본격적인 시작과 문명의 붕괴를 상징하며, 작품은 이 폭발의 순간을 거대한 우주여행의 출발점처럼 연결한다”고 진술한다.

화면은 턴테이블 위에 놓인 빙글빙글 돌아가는 ’오! 보이저(OH! VOYAGER)‘ 앨범을 보여주면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화면은 지구가 점차 멀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거대한 컬러 모니터 앞에 지팡이를 잡고 우주복을 입은 흰머리 할머니의 뒷모습이 나타난다. 우주복을 입은 소녀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혜성을 바라본다. 소녀는 거대한 컬러 모니터를 향해 달린다.

아기용 회전 모빌(crib mobile)이 돈다. 주택가 골목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소녀. 그런데 그 장면은 소녀의 시선을 그려져 있기 때문에, 소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소녀가 거실 마루 바닥에 누워 마당에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다양한 인형들이 길거리에서 퍼레이드를 한다. 다양한 장난감들의 머리가 하늘에서 마치 행성들처럼 떠 있다. 소녀가 자신보다 10배는 커 보이는 인형과 서로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눈다.

카메라는 서서히 소용돌이치는 하늘로 움직인다. 블랙홀을 연상시키는 소용돌이 이미지가 나타난다. 검은 구멍으로 들어서자 다양한 인형들이 허공에 떠다닌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바람을 가르며 스케이트보드 탄다. 보이저가 거대한 복숭아 행성 주위를 돈다. ’SYSTEM ANOMALY DETECTED(시스템 이상 감지)’가 뜬다. 소녀의 눈동자가 멈춘다.

우주에 떠 있던 인형들이 회색 콘크리트로 변해 부서진다. 회전목마가 불탄다. 믹서 아가씨들이 등장한다. 잠자리에서 핸드폰을 보는 여고생의 뒷모습이 나타난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핸드폰을 보면서 걸어간다. 하늘에서 각종 약이 나타난다. 다시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보면서 걷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거대한 미래의 데이터 왕국이 나타난다. 무지개 빛을 향해 보이저가 날아간다.

영상 초반에 보았던 거대한 컬러 모니터 앞에 지팡이를 잡고 우주복을 입은 흰머리 할머니의 뒷모습이 다시 나타난다. 지하철 역사를 걷고 있는 지팡이를 든 흰머리 여자의 뒷모습이 등장한다. 마스크를 쓴 군중 중에 한 여성이 마치 CCTV를 보듯 고개를 돌려 우리(관객)를 향해 시선을 던진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았던 장면들이 역재생(reverse motion) 된다.

데이터 왕국이 폭발한다. 우주복을 입은 소녀가 거대한 컬러 모니터를 향해 달린다. 소녀는 불기둥으로 변신해 보이저와 함께 우주여행을 한다. 소녀가 컬러 모니터 위에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크레딧이 나오고, 소설 형식을 빌린 도수진의 ‘작가노트’가 나온다.

도수진의 영상작품 <오 보이저>는 한 편의 매혹적인 애니메이션이다. 그녀는 우주를 떠도는 탐사선 보이저와 자신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상상으로 작업한 작품이라고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나는 보이저호가 항해를 시작한 그해에 태어났다. 목성이나 토성 같은 행성이나 태양계 바깥 공간을 탐사하는 멋진 목적은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나는 보이저호에 감정이입이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면 보이저호가 마주했을 우주의 낯선 행성들을 떠올렸다. 몸과 마음이 어려운 시절에는 빛 한 점 없는 무한한 우주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는 보이저를 상상해 보곤 했었다.”

도수진의 ’빙글빙글(bingle bingle)‘

도수진의 <빙글빙글(bingle bingle)>(2026)은 1분 20초 런닝타임의 영상작품이다. 물론 그녀의 <빙글빙글>은 영상과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사는 도수진이 직접 썼고, 작곡은 생성형 AI 수노(Suno)를 활용해 제작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늘 작사를 먼저하고, 그 가사로 곡을 만든 다음 최종적으로 영상작업을 한다고 한다. 일단 그녀의 ’빙글빙글‘ 작사부터 읽어보자.

빙글빙글

빙글빙글 돌고
빙글빙글 춤춰
빙글빙글 돌고
빙글빙글 춤춰
너랑 같이 가고 싶어 빛 없어도 괜찮아
멀리 온 줄 알았는데 아직 여기 그대로네

빙글빙글 돌고
빙글빙글 춤춰
빙글빙글 돌고
빙글빙글 춤춰

빙글빙글(bingle bingle)_싱글채널비디오_1min 20sec. 2026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도수진은 작가를 먼저 한 다음 작곡을 한다. 그녀가 ’빙글빙글‘ 작곡을 위해 작성한 프롬프트(prompt)는 다음과 같다.

“1980년대 레트로 신스팝과 시티팝의 영향을 받은 음악, 현대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프로덕션이지만 빈티지한 질감 유지,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코러스가 걸린 일렉트릭 기타, 펑키한 베이스라인, 빈티지 드럼 머신 그루브, 미드 템포,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몽환적인 분위기, 약간 초현실적이고 최면적인 감각, 남성 보컬, 부드럽고 담담하며 약간은 감정이 분리된 듯한 톤, 단순하고 반복적인 멜로디, 최소한의 감정 표현”

도수진은 음악을 제작한 다음 영상작업을 한다. 그녀는 이미지를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Adobe Illustrator)로 제작했다고 한다. 물론 그녀는 이미지를 제작한 다음 디지털 모션 그래픽 및 합성 소프트웨어인 애프터 이팩트(After Effects)와 중국의 숏폼(short-form) 비디오 및 그래픽 편집 앱인 캡컷(Capcut)에서 애니메이션 작업과 편집을 진행했단다.

도수진의 <빙글빙글>은 서로 다른 캐릭터들이 교차하며 빙글빙글 회전하는 장면들로 구성된 영상작품이다. 노랑 안경을 쓴 여자, 파란 토끼, 빨간 호랑이, 미국 100달러 지폐 속 인물인 벤저민 프랭클린, 핸드폰을 보는 소년이 빙글빙글 돈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뛰어다니고, 검은 원 안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원을 그리는 두 인물과 빙글빙글 도는 큐피 얼굴들, 믹서기 아가씨들, 눈물을 흘리는 눈물들이 빙글빙글 돈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빙글빙글 도는 영상에 대해 도수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움직임을 통해 불안과 끝없이 되풀이되는 감정 상태를 가볍고 유희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려 했다. 각각의 캐릭터들은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채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된다. 음악 역시 단순한 반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빙글빙글 돌고 빙글빙글 춤춰‘ 같은 짧은 문장이 계속 반복되며 마치 끝없이 순환하는 중독성 있는 주문처럼 들리도록 구성했다. 이러한 반복을 통해 단순하고 가벼운 리듬 안에 현대 사회의 반복적 욕망과 감각을 담아내고자 했다. 제목인 ’Bingle Bingle‘은 의성어인 빙글빙글을 그대로 영어 표기로 옮긴 것이다. 정확한 번역 대신 발음 자체가 가진 리듬감과 낯선 느낌을 유지하고 싶었다.”


영원의 복숭아(Eternal Peach)_싱글채널비디오_5min 20sec. 2026

도수진의 ’영원의 복숭아(Eternal Peach)‘

도수진의 <영원의 복숭아(Eternal Peach)>(2026)는 런닝타임 5분 20초의 영상작품이다. 그것은 검은 우주 속에서 거대한 복숭아가 행성처럼 천천히 회전하는 영상작품이다. 도수진은 음악을 생성형 AI 플랫폼 수노(Suno)를 활용해 제작했다고 한다. 사운드는 신비로운 우주를 연상케 한다. 사운드에 관해 도수진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신비롭고 우주적인 앰비언트 사운드를 중심으로 복숭아의 관능적인 이미지와 대비되는 성스러운 분위기의 파이프 오르간 울림을 더했다. 인간의 욕망조차 거대한 자연과 우주의 섭리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도수진은 영상을 3D 아티스트와 협업해 제작했다고 한다. 영상은 어둡고 광막한 화면 속에서 복숭아가 쉬지 않고 끊임없이 회전한다. ‘복숭아’는 특히 한국·중국·일본에서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장수(長壽)’나 ‘이상향’ 그리고 ‘벽사(辟邪)’나 ‘사랑과 욕망’ 또한 ‘봄과 생명력’ 등을 상징한다. 이를테면 ‘십장생도(十長生圖)’의 복숭아는 ‘장수’를, ‘몽유도원도’의 복숭아는 ‘이상향’을, 한국과 중국의 민간신앙에서 복숭아나무는 ‘벽사’를, 서양에서 복숭아는 ‘사랑’을, 동아시아에서 복숭아꽃은 ‘봄’을 상징한다고 말이다.

덧붙여 복숭아는 현실과 환상이나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과 신선 또한 속세와 이상향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간주되기도 한다. 따라서 복숭아는 ‘도원(桃源)’이나 ‘몽유(夢遊)’와 결합해 현실 너머의 다른 차원을 여는 상징적 문(門)을 은유하게 된다. 형태적 측면에서 복숭아는 탐스러운 볼기를 닮아서인지 영어 ’peach‘에는 ’여성의 엉덩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런 까닭일까? 영상 속의 복숭아는 탐스럽고 섹시해 유혹적이다. 도수진은 복숭아의 오목함(concavity)과 볼록함(convexity) 그리고 봉합선(Suture)을 절묘하게 표현해 놓았다.

복숭아의 세로로 가르는 홈과 반대편의 뾰족한 부분 그리고 꼭지의 홈과 반대편의 돌출한 부분 사이를 잇는 (봉합)선으로 인해 양쪽으로 볼록 나온 부분은 인체의 부위를 연상케 한다. 이를테면 돌출한 부분이 여성 유방의 유두를 떠올리게 한다면, 양쪽으로 볼록 나온 부분은 탐스러운 히프를 연상하게 만든다고 말이다. 도수진은 <영원의 복숭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영원의 복숭아‘는 전시의 마지막 문장처럼 배치되는데, 이것은 앞선 작품들이 보여주었던 현대 사회 속 고통의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순환 구조로 다시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작품 속 복숭아는 매끄럽고 관능적인 형태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섹슈얼한 이미지를 표현한다. 인간이 성행위를 통해 다시 태어나듯 이 작업은 이 사회와 시스템 속 욕망과 고통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탄생하고 반복될 것임을 암시한다.”

도수진의 <오 보이저>는 미래에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고, 다시 피드백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빙글빙글 반복된다고 말이다. ’빙글빙글‘은 회전 운동 자체를 가리키는 의태어이다. 만약 우리가 빙글빙글 돈다면 현기증(Vertigo)을 느끼게 될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곳에서 ’버티고(Vertigo)‘는 단순히 도는 행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기증이나 방향 감각의 상실 그리고 심리적 불안과 추락의 감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나는 ’빙글빙글‘을 ’버티고 & 버티고(Vertigo & Vertigo)‘로 번역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버티고 & 버티고(Vertigo & Vertigo)‘는 두 개의 현기증이 서로를 응시하며 끝없이 순환하는 것이란 말인가? 그런데 도수진은 그것을 흥미롭게도 한글 ’버티고, 버티고‘와 영어 ’Vertigo, Vertigo‘로 표기해 놓았다. 그러면 그것은 단순한 ’재현(동일성)‘이 아니라 차이(difference)를 생성하는 반복(repetition)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