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스튜디오(drawing studio)

김을 & 김태헌 2인전

전시장소
space TEMI
대전광역시 중구 테미로 44번길 40
TEL 010-8405-1141
e-mail click3210@naver.com

전시기간 : 2024년 3월 29일(금) – 4월 27일(토)
오 프 닝 : 2024년 3월 29일(금) 오후 5시
초대작가 : 김을 & 김태헌
전시작품 : 평면작품 76점, 오브제 작품 19점 총 95점
전시오픈 :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픈시간 : 오후 12시부터 6시까지
전시휴관 : 매주 월요일
공동기획 : space TEMI 김주태 큐레이터 & 갤러리 R 류병학 큐레이터


김을 『드로잉 스튜디오(drawing studio)』. 스페이스 테미. 2024

김을은 1981년 원광대학교 금속공예과를 졸업하고, 1989년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1994년 금호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그는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초대받았다.

김을은 국립현대미술관과 경기도미술관 그리고 OCI미술관 등 국내의 미술관과 갤러리뿐만 아니라 독일ㅤ퀠른의 쿤스트라움(KUNSTRAUME),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베이스 프로젝트(Le Basse Projects)와 앤듀류셔 갤러리(Andrewshire Gallery) 그리고 백아트(Baik Art), 중국 베이징의 팍스 아트 아시아(Pax Arts Asia), 일본 도쿄 o 미술관 등 해외 미술관과 갤러리에 초대되었다.

김을은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올해의 작가상 2016>과 2018년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했다. 그는 중국 베이징 PSB 레지던시, 경기창작센터, 경주 국제레지던시의 입주작가였다.

김을은 <김을 드로잉 2002-2004(KIM EULL DRAWINGS 2002-2004)>(Gallery FISH. 2004), 김을 드로잉 파이50>(2005), <드로잉 : 계단(Drawing ; Stair)>(접는 미술관. 2006), <김을 드로잉북(The Kim eull drawing book)>(Gallery Ssamzie. 2006), 미쎌레이니어스 드로잉(Miscellaneous Drawings)>(Arko Art Center. 2006), <김을 드로잉>(2007), <마이 그레이트 드로잉(MY GREAT DRAWINGS)>(2011) 등 총 7권의 드로잉북도 출간했다.


김태헌 『드로잉 스튜디오(drawing studio)』. 스페이스 테미. 2024

김태헌은 1993년은 군사정권이 종말을 고하고 문민정부(文民政府)가 들어선 해에 삼정미술관에서 첫 개인전 <‘감춰진 역사’의 숨은 그림 찾기>를 개최한다. 1994년 그는 동아갤러리에서 열린 ‘평론가가 선정한 유망작가’ <이 작가를 주목한다>(윤범모 기획)에 심광현 미술평론가의 추천으로 선정된다.

1998년 그는 <공간의 파괴와 생성_성남과 분당 사이>(성곡미술관/내일의 작가)로 미술계에 주목받으면서 <민중미술 15년전>(국립현대미술관), <청계천 프로젝트>(서울시립미술관), 광주비엔날레, (Andrewshire Gallery, 미국 LA) 등 국내외 다양한 그룹전에 초대되었다.

그는 성곡미술관, 삼정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갤러리 피쉬, 갤러리 스케이프, 스페이스 몸 미술관, 봉산문화회관 기억공작소, 스페이스 자모, 갤러리 마리타임 등에서 20여 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그는 1999년과 2000년 지역신문인 ‘분당뉴스’에 그림+글 형식의 ‘그림일기’를 연재한다. 그는 2007년 중앙일보 공지영 연재소설 <즐거운 나의 집> 그림작업을 했으며, 경기일보에 <경기, 1번 국도를 가다>라는 타이틀로 그림/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는 이미지와 텍스트로 이루어진 몇 권의 ‘아트북’도 발행했다.

<천지유정(天地有情)>(갤러리 피쉬. 2004), <1번국도>(그림문자. 2004), <김태헌 드로잉>(아르코미술관. 2006), <그림 밖으로 걷다>(갤러리 스케이프. 2007), <붕붕>(그림문자. 2010), <검은말>(TABLE STUDIO. 2010), <빅보이>(UPSETPRESS/알마 출판사), <연주야, 출근하지 마>(UPSETPRESS/알마 출판사)가 그것이다. 2020년 스페이스 자모에서 발행한 <그림아 놀자>는 김태헌의 9번째 아트북이다.

김태헌의 작품은 금호미술관, 성곡미술관, 부산민주기념관, 경기도미술관, 아라리오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국공립미술관과 사립미술관 그리고 개인 컬렉터들이 소장하고 있다.

드로잉 스튜디오(drawing studio)

김을과 김태헌이 ‘드로잉’을 전면에 내세워 전시한 것은 2003년 분당 삼성플라자 갤러리에서 개최된 『그림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그 전시는 3김(김을, 김지원, 김태헌) 그룹전이었다. 당시 이 드로잉 전시를 본 갤러리 피쉬 대표는 2004년 릴레이 개인전을 기획한다.

2006년 국내 미술계는 드로잉에 주목한다. 아르코미술관의 『드로잉 에너지』와 소마미술관의 『잘긋기』가 그것이다. 그리고 같은 해 빨강숲에서 양김(김을 & 김태헌)의 <유치한 그림>을 개최한다. 2010년 그들은 소마미술관이 기획한 『한국 드로잉 30년』에 초대된다.

그런데 김을과 김태헌이 말하는 ‘드로잉’은 우리가 알고 있는 '드로잉' 개념을 넘어서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드로잉'은 마치 ‘종합격투기(mixed martial arts)’처럼 기존의 드로잉과 회화 그리고 판화와 사진 또한 오브제 등을 접목시킨 작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들의 작품을 ‘종합예술(mixed material arts)’로 부르고자 한다.


김을 & 김태헌 2인전 『드로잉 스튜디오(drawing studio)』. 스페이스 테미. 2024

이번 스페이스 테미의 김을 & 김태헌 2인전 『드로잉 스튜디오(drawing studio)』에는 평면작품 76점과 오브제 작품 19점 등 총 95점이 전시된다. 그들의 작품들은 작년부터 스페이스 테미 전시를 위해 작업한 신작들이다.

김을은 일명 ‘앗상블라주(assemblage)’ 작품 19점과 종이에 물감으로 그린 드로잉 9점을 선보인다. 그리고 김태헌은 작년부터 4호 캔버스에 과슈(Acrylic guache)로 매일 하루에 한 점씩 그리고 있는 일종의 ‘그림일기’ 67점을 선보인다.

김을의 ‘드로잉 스쿨(drawing school)’

김을의 일명 ‘드로잉 스쿨’ 시리즈는 건물 안이 아니라 자연(초원이나 해변가 그리고 사막이나 산정상 또한 바다 위 뗏목이나 폭포수)에서 드로잉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드로잉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알몸이다. 와이? 왜 그들은 누드로 드로잉 수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드로잉에 입문하려면 먼저 내면을 발가벗어야 함을 은유한 것이죠.”


김을_드로잉 스쿨_종이에 수채_42x30cm. 2023

김을의 ‘드로잉 스쿨’ 시리즈에는 늘 민머리의 사내가 등장한다. 그 사내는 다름아닌 김을의 분신이다. 민머리 사내는 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거나 망치를 가지고 있다. 머시라? 당신은 지팡이를 보면서 문득 선(禪)의 ‘방(棒)’을 떠올렸다고요?

‘방’은 스승이 막대기(棒)로 제자를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낼 때 차용되는 행위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김을의 ‘드로잉 스쿨’ 시리즈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드로잉)을 그린 그림이란 말인가?

자, 이번에는 김을의 ‘망치’를 보도록 하자. 그는 ‘드로잉 이즈 해머링(Drawing is Hammering)’이라고 말한다. 김을은 어느 언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에서 드로잉은 회화의 부수적인 작업이나 2류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내게 드로잉은 형식이 아니라 태도다. 머릿속에 담긴 것을 그때그때 자유롭게 표현하는 태도다,”

김을은 드로잉을 일명 ‘손재주’가 아닌 ‘내면의 질’로 말한다. 그는 작가노트 <수신제가치화(修身齊家治畵)...>에서 “손재주는 언제나 내면을 따르는 법”이라면서 “그렇지 못하고 손재주가 홀로 날뛴다면 크게 혼을 내어 내면을 따르도록 순리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김을의 드로잉은 전통적인 드로잉에 딴지 걸고, 훼방 놓고, 더럽히고, 해체 시킨다. 왜 그가 자신의 드로잉을 연필이나 붓이 아닌 ‘망치’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는지 이해하시겠죠? 그렇다면 그에게 드로잉은 (니체의 목소리를 빌려 말한다면) ‘망치로 미술하기’가 아닌가?


김을_4-TZ studio_water color on paper_30x36cm. 2020

이번 스페이스 테미에 전시한 김을의 드로잉 중에 사막에 만든 스튜디오 그림이 있다. 스튜디오 문에는 ‘TZ S’라고 쓰여 있다. 그것은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twilight zone studio)’를 뜻한다. 그는 사막에 만든 스튜디오를 그린 드로잉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몽고 사막에서 해보고 싶었던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 프로젝트’에 대한 상상화입니다.”

2020년 김을은 몽골 아르바이헤르(Arvaikheer) 인근의 초원지대에서 미술 프로젝트(Twilight zone Studio- Mongol)를 진행하고자 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와이? 왜 그는 사막에 스튜디오를 건축하고자 한 것일까?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는 동시대의 예술인으로서 삶과 창조행위의 본질에서 너무 멀어져 버린 현실에 회의하고 반성하면서 미래를 향한 정신을 가다듬고 새로운 길을 열어보고자 하는 데 있다.”

김을의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twilight zone studio)’

이번 스페이스 테미에 선보이는 김을의 ‘앗상블라주(assemblage)’는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를 일종의 ‘미니어처’로 제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머시라?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가 무슨 뜻이냐고요?

‘트와일라잇’은 문자 그대로 ‘2개(twi) 빛(light)’을 뜻한다. ‘트와일라잇’은 일출 전과 일몰 전후에 하늘이 희미하게 밝은 상태를 뜻하는 박명(薄明)이나 황혼(黃昏) 혹은 서광(曙光)으로 해석되곤 한다.

그런데 ‘트와일라잇’이 형용사로 쓰일 경우 ‘불가사의한’ ‘비밀스러운’ 혹은 (분명히 정의되지 않는) ‘중간지대의’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트와일라잇 존’은 ‘경계가 애매한 중간 영역’ ‘미지의 세계’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김을은 자신의 작업실을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중간지대’로 본다. 김을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나의 스튜디오는 현실에 존재하지만, 그 내부의 공기는 사뭇 비현실적이다. 이는 작가 자신도 역시 현실에 존재하지만, 현실에만 눈을 고정하지 않고 현실 너머의 세계를 동시에 응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공간은 현실과 비현실, 이상과 현실. 삶과 죽음 등이 공존하고 있는 특수한 세계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럴 필요가 없는 작가도 있을 수 있겠지만,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나의 스튜디오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 즉 중간지대라 할 수 있다. 나의 스튜디오를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라 칭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의 스튜디오는 현실 공간이다. 하지만 김을의 현실 공간에서 ‘가상작품’이 생산된다는 점에서, 그의 스튜디오는 현실과 가상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이를테면 그는 리얼리티를 허구 속으로 스며들게 하고, 허구가 리얼리티 속에 정착되게 다양한 작품들을 연출해 놓았다고 말이다. 따라서 그의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는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 되는 셈이다.


김을_스튜디오_혼합재료_20x13x9cm. 2024

스페이스 테미에 전시한 김을의 ‘앗상블라주’ 작품들 중에 벽면에 연필로 ‘화증실협(畵增室狹)’이란 사자성어가 쓰여진 작품이 있다. 머시라? ‘화증실협’이 무슨 뜻이냐고요? 김을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화증실협’은 ‘그림이 늘어나면, 화실은 좁아진다’를 뜻합니다. 화업 40년 만에 깨달은 작업실에 대한 진실 중 하나입니다. 이 진실에 대한 유머스런 사자성어랍니다.”

김을은 미니어처 스튜디오 안에 그의 일명 ‘비욘드 더 페인팅(Beyond the Painting)’과 둘둘 말린 그림 그리고 벽면에 기대어진 백색 캔버스들로 연출해 놓았다. 물론 미니어처 스튜디오 안에 설치된 그의 ‘비욘드 더 페인팅’도 신용카드 크기만 하다.

김을의 ‘비욘드 더 페인팅’ 시리즈는 정면에서 보면 2차원적인 평면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신이 작품의 측면을 본다면, 그것이 두께를 지닌 ‘작품’이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김을은 두께를 지닌 피부(표면)에 검은 창문을 설치해 놓았다. 그의 ‘비욘드 더 페인팅’에서 볼 수 있는 축소판 창문은 뒤샹(M. Duchamp)의 <신선한 과부(FRESH WIDOW)>(1920)와 마찬가지로 격자로 되어 있고, 격자로 나뉘어진 창문 숫자 역시 8개란 점이다.

김을의 ‘검정 창문’은 뒤샹의 ‘검정 창문’과 달리 투명한 유리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창문은 ‘검정 창문’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캔버스 이면의 공간을 검정으로 채색해 놓았기 때문이다. 왜 김을은 캔버스 이면의 공간을 ‘암흑 공간(검정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것일까? 그 점에 관해 김을은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저의 ‘비욘드 더 페인팅(Beyond the painting)’ 시리즈는 물리적 구조로서 회화표면의 뒤에 검은 공간이 조성되어 있고 이 앞뒤의 두 공간은 창문이라는 통로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표면의 무의미한 공간을 지나 그 너머의 어두운 침묵 속의 상상의 공간 속에서 표면에서 생략된 진실의 세계를 유추, 상상해 보는 사색적이고 자유로운 미적 세계를 탐색하게 됩니다. 이때, 감상자는 수동태에서 벗어나 능동적 자세로 그림을 접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관객은 표면의 무의미한 공간을 지나 ‘창문’ 너머의 어두운 침묵 속 상상의 공간 속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나는 ‘검은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자화상)을 보았다. 만약 내가 김을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다음과 같이 중얼거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가 가짜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 휩싸였다.’

김태헌의 ‘화난중일기(畵亂中日記)’

김태헌의 ‘그림일기’는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당시 그의 ‘그림일기’는 갤러리의 ‘지면(地面)’이 아닌 신문의 ‘지면(紙面)’에 전시되었다. 그는 1999년부터 2000년까지 2년간에 걸쳐 성남시 지역신문인 ‘분당뉴스’에 그림+글 형식의 ‘그림일기’를 연재한다. 왜 그는 신문지상에 작품을 연재한 것일까?

김태헌이 작품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바로 관객/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는 ‘붕(鵬)새’의 시선으로 경험한 삶의 지혜를 관객/독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신문지상에 작품을 전시한 것이다. 왜냐하면 ‘지상전(紙上展)’은 ‘지상전(地上展)’보다 더 많은 관객/독자가 보고 소통할 수 있는 유용한 창구이기 때문이다.

2001년 김태헌은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개인전 『화난중일기(畵亂中日記)』를 개최한다. 당시 그는 수백 점의 ‘그림일기’를 전시했다. 그는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 형식에 그림(畵)을 접목시켜 그가 바라본 국내 사회와 경제 그리고 정치와 문화도 ‘그림일기’로 다루었다

20016년 김태헌은 스페이스 몸 미술관에서 개인전 『연주야, 출근하지 마』를 개최한다. 그 개인전은 15년 전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개최해 주목받았던 ‘화난중일기’의 해외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연주야, 출근하지 마』는 동남아 6개국을 돌면서 그가 바라본 동남아의 사회와 경제 그리고 정치와 문화를 그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이번 스페이스 테미에 선보이는 김테헌의 신작 ‘그림일기’는 마치 먼 길을 돌아 집으로 돌아온 듯 자신에 주목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마치 아이처럼 호기심이 많다. 그의 호기심은 사회와 정치 그리고 경제와 문화에서 자기 자신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의 ‘그림일기’는 호기심에 대한 ‘답’이라기보다 관객에게 말 걸기를 하는 ‘질문’에 가깝다.

김태헌의 ‘그림일기’

김태헌의 드로잉 66점 중에서 몇 점만 사례로 들어보자. 그의 <아버지와 수석> 시리즈는 수석에 엉뚱한 이미지들을 접목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아버지와 수석 I>은 수석 위에 물구니무를 서고 있는 체조선수를 그린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마치 구름 같은 하얀 이미지들을 그려놓았다.


(좌)김태헌_아버지와 수석 I. 2023
(우)김태헌_아버지와 수석 II. 2023

도대체 수석과 체조선수는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김태헌은 “아버지 꿈이 체조선수였다”면서 “하지만 아버지는 농사일로 인해 꿈을 이루시지 못했다”고 말한다. 최근 그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는 아버지의 유품 중에서 수석 몇 점을 집으로 가져왔단다. 그는 오랜 기간 수집하셨던 아버지의 수석을 보면서 아버지의 꿈을 생각한다.

김태헌의 <아버지와 수석 II>는 수석 위에 붉은 결정체를 그려놓은 그림이다. 만약 당신이 그의 <아버지와 수석 I>을 참조한다면, 수석 위의 결정체가 그의 아버지께서 이루지 못한 꿈을 그림(결정체)으로 이루게 한 것임을 추론할 수 있겠다. 나는 그의 <아버지와 수석> 시리즈를 보면서 문득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좌)김태헌_모든 게 길이다. 2023
(우)김태헌_꼬부랑길. 2023

김태헌의 ‘그림일기’에는 길이 종종 등장한다. 그의 <같은 길보다 다른 길>과 <모든 게 길이다> 그리고 <꼬부랑길>이 그것이다. 그의 <같은 길보다 다른 길>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주목한다. 그의 <모든 게 길이다>는 마치 사방으로 핀 난초의 방향처럼 다양한 길로 열려 있다. 그의 <꼬부랑길>은 손금을 그린 것이다.

손금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 및 과거와 현재를 판단하고, 그것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등 사람의 일생을 파악하는 것을 ‘수상(手相)’이라고 한다. 그런데 김태헌이 그린 ‘손금’은 제목 그대로 ‘꼬부랑길’이다. 그는 “직선보다 곡선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의 <꼬부랑길>을 보고 문득 나의 손금이 궁금해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김태헌은 꽃들이 만발한 나무를 그려놓고 그림 하단에 ‘잡념(雜念) 꽃이 피다’라고 적었다. 잡념은 여러 가지 잡스러운 생각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흔히 ‘잡념을 떨쳐버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잡념을 ’수행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옳지 못한 생각‘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김태헌은 사방으로 자란 나뭇가지들에서 피어난 꽃들을 잡념에 비유해 놓았다. 그렇다면 그에게 잡념은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김태헌의 ‘스마일’ 시리즈를 보자. 그는 붉은 인물이 스마일 풍선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걱정마라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사람이 스마일들을 발 위에 그리고 팔 안에 또한 등에 메고 있는 모습을 그려놓기도 한다. 급기야 그는 마치 ‘행복 전도사’처럼 소방관이 호수로 스마일들을 뿌리는 그림을 그린다.


(좌)김태헌_잡념(雜念) 꽃이 피다. 2023
(우)김태헌_걱정마라!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냐!. 2023


(좌)김태헌_붕붕-놀子. 2023
(우)김태헌_놀子. 2024

김태헌의 ‘놀자’

김태헌의 ‘그림일기’에 그려진 이미지들은 마치 풍경을 모델로 그린 풍경화처럼 일상에서 만난 이미지들을 차용해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그의 이미지는 일종의 ‘레드-메이드’ 이미지인 셈이다. 이번 스페이스 테미 전시장 입구에 설치한 그의 <놀자>는 이미지 차용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태헌_놀자_캔버스에 유채_72.6x53cm. 2016

그것은 옛 바른생활 표지에서 보았던 태극기를 봉에 달고 있는 ‘영희와 철수’ 그리고 (바둑이가 아닌) 남동생을 그린 그림이다. 아니다! ‘영희와 철수’는 태극기가 아닌 ‘놀자기’를 달고 있다. 왜 김태헌은 태극기를 ‘놀자기’로 전이시킨 것일까? 혹 그는 국내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태극기를 ‘놀자기’로 교체시킨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는 태극기를 ‘놀자기’로 전이시켜 국가의 ‘나라사랑’ 강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닐까?

김태헌의 ‘그림일기’는 낯익은 것들을 ‘낯설듯 새롭게 칼날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그림일기는 언뜻 보기에 쉽게 다가오지만 이내 곱씹게 한다. 그렇다! 그의 그림일기는 잠언(箴言)과 잠화(箴畵)로 표현되어 있다. 그렇다면 관객/독자는 작가가 제안하는 삶의 지혜를 곱씹어야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