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현 Inhyeon Lee

“면을 멀리서 보면 점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점 속에도 면이 펼쳐집니다... 제가 중요하게 본 것이 거리 개념입니다. 작품의 깊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의미이건 물리적인 의미이건 간에 정면에 드러나지 않은 옆면을 보여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여기서 깊이의 의미를 이중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즉 물리적인 두께에 의해 이미지가 혹은 물성이 캔버스 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트릭, 일종의 거꾸로 된 트롬프·레이유를 사용합니다. 면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이 측면의 번짐이라고 하는 우회로를 통해서 캔버스 안을 보여주었다면, 점은 캔버스의 측면을 통하지 않아도 옆으로 번져가는 혹은 스며 나오는 자체의 애매한 볼륨만으로 바로 캔버스의 두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바라보는 거리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죠. 점을 찍는다는 것이 그림 그리는 것을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붓에 물감을 찍어서 가장 단순하게 캔버스에 흔적을 남긴다는 것조차 우리의 의지대로 완벽하게 통제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가능하리라는 느낌이 의지의 미술사를 이끌어온 원동력인 셈이죠. 반 고호의 화면에서부터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물감의 의지가 폴록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통제를 벗어나 물감의 자율성에 몸을 맡긴 채 캔버스에 물감을 뿌릴 때 저는 폴록이 통제로부터 2-30cm 밖에 안 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닿지 않은, 떨어진 거리 만큼만 통제에서 멀어진 거죠. 그것이 붓을 직접 캔버스에 대든 거리가 10cm, 1m가 됐든 혹은 확대경을 보고 그리든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제가 물감을 묽게 쓰고 raw canvas를 사용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 물감이나 캔버스 쪽에 자리를 마련해 놓아야지 통제되는 부분과 통제되지 않는 부분의 성격이 나누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입니다.”